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문단 편집) == 기타 == * 땅에 떨어진 종이 쪼가리까지 주워서 읽는 다독가였다. 그의 작품은 [[플라톤]], 『[[유토피아]]』에서 [[아랍]] 문헌까지 인용했다. * 세르반테스의 이름을 딴 '[[https://en.wikipedia.org/wiki/Miguel_de_Cervantes_Prize#Laureates|미겔 데 세르반테스 상]]'은 스페인어 작가에게 수여되는 문학상으로 '스페인어권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 현재 그의 집과 출생지는 1965년, 스페인 정부에서 사들여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고, 매년 10월 9일이면 그의 고향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세르반테스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세르반테스 축제를 연다. * 상술된 대로 [[레판토 해전]] 참전 용사였고 전투 중 부상을 입어 한쪽 팔을 못 쓰게 됐다. 따라서 실질적 외팔이로 여생을 살았고 스페인어권에서도 세르반테스를 부르는 별칭으로 '레판토의 외팔이 (el manco de Lepanto)'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걸 진짜로 부상당한 팔이 절단당한 줄 착각해서 아예 한쪽 팔이 없는 완전 외팔이로 그린 후대 일러스트레이션, 그림들도 꽤 있는데 고증 오류이다. 부상으로 실질적 외팔이 신세가 되긴 했지만 아예 절단하진 않았다. * [[멕시코]]에도 그의 이름을 딴 축제 ‘세르반티노 국제 페스티벌(Festiva Internacional Cervantino)’이 있다. 해마다 10월 멕시코 과나후아토(Guanajuato)에서 열리는 중남미 최대의 문화 예술 행사다. 인구 10만여 명이 살고 있는 소도시에 축제 기간 동안 전 세계 예술가 3000명이 찾아와 연극·음악·춤 등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 도심 곳곳의 역사 유적이 축제 무대로 활용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덕분에 과나후아토 시민은 문화적인 관심과 욕구가 높았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이 열렸는데, 1952년 과나후아토 대학생이 대학교 광장에서 개최한 연극 무대도 그중 하나였다. 대학생은 근대 소설의 시초라 평가받는 『돈키호테』의 저자 ‘미구엘 드세르반테스’ 희곡을 바탕으로 연극 무대를 올렸고, 바로 이 행사가 과나후아토 예술 축제 ‘세르반티노 국제 페스티벌’의 효시가 됐다. 연극 축제가 춤 공연, [[클래식 음악|클래식]] 공연, 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포괄하면서 1972년부터는 아예 멕시코 정부가 나서 행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 3000여 명의 예술가가 댄스·연극·콘서트·전시회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통해 세르반테스의 삶과 작품을 공연한다. 세르반테스의 대표작 『돈키호테』는 [[오페라]]·[[뮤지컬]]·[[영화]]·[[퍼포먼스]] 등으로 재해석된다. * 동시대의 활동한 작가로 또다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었는지를 놓고 아직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정설은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마드리드 근처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 얘기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스페인을 방문했다는 거다. 당대에 이미 명성을 얻은 두 문호가 한 번쯤은 조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2014년 말 런던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하나 발견됐는데, 돈키호테의 [[내러티브]]를 각색한 극작품이었다. 제목이 '거만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신부들'이란 뜻인데, 세르반테스의 서사 작품을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읽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두 작가가 개인적으로 서로 알았든 몰랐든 더 중요한 사실은 동시대의 두 사람이 서양 문화사의 근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작품 속에서 근대적 인물상을 그려냈다. 세르반테스는 근대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고,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연극의 근대성을 확보했다. 한편 동시대 인물인 두 사람은 같은 날(1616년 4월 23일)에 죽은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대륙에서 채택한 [[그레고리우스력]] 대신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정확하게 따지자면 같은 날 죽지는 않았다. *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책의 날인 [[4월 23일]]이면 돈키호테 읽기 대회가 열린다. 마을마다 릴레이로 독회를 한다. 스페인 대도시나 시골 구석구석 마을에도 타일(아랍에서 전수받은 전통 문화)에 돈키호테의 명문구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 당대에 그려진 세르반테스의 공식적인 [[초상화]]는 없다. 모든 세르반테스의 초상화는 어디까지나 상상도다. * 머리카락은 [[금발]]이었다. * [[베이징대학]]의 교내 공원에 세르반테스의 전신 동상이 놓여 있다. 1986년에 [[마드리드]]와 [[베이징]]이 [[자매 도시]] 결연을 맺을 때 마드리드 시에서 보내준 것. 2.35m로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자세를 하고 있어 제법 역동적이다. [[https://wapbaike.baidu.com/item/北京大学塞万提斯像/4770449?adapt=1&fr=aladdin|#]] * 세르반테스의 이름을 딴 '[[세르반테스 문화원]]'은 [[스페인어]]의 홍보와 교육, 그리고 [[스페인]]·[[라틴아메리카]]의 문화 보급을 위해 [[1991년]] 스페인 정부가 세운 [[공공기관]]이다.[* 비슷한 기관으로 [[괴테]]의 이름을 딴 '괴테 문화원'이 있다.] [[파일:attachment/에스파냐 페세타/esp053.jpg]] * [[1928년]] [[스페인 페세타|스페인 100페세타]] 지폐의 인물이었다. 또 현재까지 [[스페인]]의 50센트, 20센트, 10센트 [[유로]] 주화 뒷면의 얼굴을 담당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